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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16.5.21)

heath1202 2016. 5. 22. 03:57

모교 민주동문회와 합류해서 광주 5.18 민주묘역 참배를 다녀왔다.

전에 구묘역에서 참배를 하였으니 다녀간지가 벌써 20년이 흘렀다.

한 묘 앞에서 아버지의 영정을 안고 있는 꼬마의 사진을 보고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그 아이는 마흔 언저리가 되었을 테니, 정말 세월이 빠르다.

오늘도 다시 다짐하고 생각했다.

가는 세월을 인식도 못한 채 우왕좌왕 흘려보내고, 벌써 그리 되었나, 세월 참 빠르구나,

망연자실 하는 일은 제발 좀 그만 하자고. 조금만 하자고. 그러기엔 삶이 너무 짧지 않나.

역사의 걸음이 너무 더뎌서, 혹은 역사를 되돌리려는 책동을 막지 못해 죄스럽고 부끄럽고 화가 난다. 

곰곰 생각해보면 적을 탓할 것이 아니다.

적의 본질은 늘 같으므로, 문제는, 변수는 우리인 것이다.  더 단결하지 못하고 더 실천적이지 못하고 더 영리하지 못한.

좀체로 변하지 않으려는 세상에 진력도 나고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지만, 그렇게 패배의식 절어 한심하게 제 삶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광주에 와서 다시 그런 생각을 한다.

결국은, 우리는 이루어 낼 것이다.  희망하기를 멈추면 모든게 끝. 마치 팽이처럼. 희망이라는 채찍을 맞아가며 계속 꿈을 꿔야 할 것이다. 

 

다른 데서 오는 이들과 합류를 해야했고 약속이 조금 어긋나기도 했기 때문에, 게다가 날씨가 엄청 더웠기 때문에 광주행이 좀 지난하였다.

많은 이들과 앉아 있는 것도 내 성격상 내내 편치는 않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두 잘된 일이었다. 내가 실천은 기피하며 꿈만 꾸어대는 '연대'라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나의 소중한 82학번 친구들

 

 

유영봉안소-영정사진을 모신 곳

 

 

 

 

군데군데 학생들의 편지들이 놓여 있었다.

 

 

 

 

 

 

비석 뒷면에 새긴 글귀들이 다 절절하고 인상적이었다. 하나하나 읽어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워낙 촉박한 시간 탓으로 주마간산으로 지나칠 수 밖에.

몇 기에서 무작위로 뽑은 글귀.

 

 

가장 가슴이 아팠던 구절.  끝내 이겨내지 못하는 고통으로 지쳐 다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너무 역력해서 가슴이 너무 아팠다.

 

 

 

 

 

 

 

 

 

마침, 김세진과 함께 1986년 분신 산화한 이재호 열사의 추모식이 열리고 있었다.

 

 

 

아홉 시 반도 넘어 부여에 도착하는 바람에 신동엽문학관에서 있은 황금성 선생님의 노래공연을 보지 못해 아쉽고 죄송했는데

다행이 열한 시가 훌쩍 넘도록 뒷풀이가 이어져 그곳에서나마 한껏 흥이 오른 선생님의 노래를 여러 곡 들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