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 탁했다.
동백꽃 보러 간 어제도, 오전내 뒹굴거리며 잠깐씩 창밖을 내다보던 오늘도.
오전에 다큐멘터리를 다섯 편은 본 것 같았다.
두세번씩 반복해 보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 르네 마그리트, 승효상, 베를린 박물관, 아르누보, 미술읽기......
아무리 미술을 좋아한대도 이정도면 멀미가 나지 않겠는가.
대기는 좀체 개이지 않는다. 흙빛이다.
그래도 나섰다. 미적지근한 실내 공기를 견딜 수가 없어서다.
생각만으로도 목이 칼칼해지는 이런 날씨에 들판을 걸을 수는 없는 일이다.
오랜 만에 좋아하는 박물관에 갔다.
관람료가 무료라 그냥 주차장에서 내처 걸어 입장만 하면 된다.
박물관 뜰은 언제보아도 좋다.
역사학자나 고고학자가 보면 서운하겠지만 온전치 않은 유물을 보는 것이 나는 참 좋다.
그것들은 전시실 안에 고이 안장되지 못하고 역사적 사명의 부담없이 뜰의 장식품처럼 편안하고 느긋하게 놓인다.
박물관 뜰에 산수유가 활짝 피었다. 지리산보다 딱 한주가 늦다.
박물관을 시시콜콜 다 볼 필요는 없다. 그러다보면 진력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부여사람이고 마음만 먹으면 지나가다가도 잠깐 들러볼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은 2,3 전시실만 보았다.
전시물들이 체온을 가진 것처럼 따스하게 느껴진다.
오전 내 집에 있으면서 느끼던 이유 모를 부아가 기분좋게 사라졌다.
박물관이 새롭게 단장을 해서 참 산뜻해졌다.
연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대고 주작, 현무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는 학구열이 넘치는 어린이들을 보는데, 참 흐뭇하다.
답사며 박물관을 어지간히 다닌 모양이다. 초등학생들 같은데.
그러고 보니 오늘은 4월3일, 4월이군요.
곧 세월호 참사 2주년 째구요.
진실은 여전히 요원하고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없으니 희망을 꿈꿀 수 있을까요.
이렇게 4월은 결국 잔인한 달이 됩니다.
너무 곱디고운 길가 홍매
국립부여박물관
나지막한 금성산 품에 아늑하게 안긴 부여박물관
서산마애삼존불(모조). 참 기분좋아지는 미소다
이 무슨 반달리즘인가. 광배만 남고 부처의 얼굴이 다 파괴되었다.
이런 기와로 집을 지으면 참 이쁘겠다.
마침내 백제금동대향로.
귀여운 아가들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박물관 뒷길. 십분 정도의 짧은 산책로지만 호젓하니 걸어볼만 하다.
이곳은 옛날에 화첩하나 들고 아이들이랑 소풍 삼아 나와 한나절 뒹굴거리며 놀던 곳이다.
무슨 주춧돌인가를 말판 삼아 가위바위보를 하며 인간 윷놀이를 하는 가족
박물관에서 내려다보는 부여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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