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삶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달라졌다.
변화는 당연한 일일테고 일면 좋은 면도, 그렇지 않은 면도 있으리라.
한가지 분명한 것은 예전에 비해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담대해졌다는 것이다.
젊은 날에는 한층 결기는 있었지만 마음 한 켠으로 두려움을 이기려 애쓰며 '감행'하는 기분으로 했던 일들이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월이 가르쳐준 여유와 유연함과 배짱이다. 내가 하는 일이래야 고만고만한 일일진대
이 나이 먹어 겁날 것이 무엇이랴 싶은.
또는 그간의 삶이 굴욕이었다고까지는 안하겠지만 썩 당당하게 살았다고도 자신하지 못하는데
남은 생도 그리하며 살 것인가 하는 생각인 것이다.
얼마전 역사교과서 국정화반대 시국선언에 소소하게 이름을 올렸다.
정말 암시렁도 않했다. 민주시민으로 투표하는 것만큼이나.
물론 예전에도 그쯤 피할 만큼 나를 이기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시달림이 있지는 않을까
성가실 것이 신경이 쓰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확실히 이제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알량한 이름자 이만명 시국선언에 함께 올리고, 가당찮게 그래, 제발 싸움을 걸어왔으면 싶은 것이었다.
(물론 저들은 이슈화를 피하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에 일을 크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지만)
분명 나는 아주 이기적이고 게으른 소시민이어서 앞으로도 내 한계를 훌쩍 넘어설 엄두 따위는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일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만큼은 열심히 해두고 싶다는 다짐을 요즘 자주 한다.
허울 좋은 말 뿐이 아닌 작아도 구체적인 실천을 말이다.
참 오래 게으르게 살았고 어쩌면, 아니 분명히 내 삶의 투철함의 부족이 지금의 참담한 정치 사회 경제 현실을
결과하는데 일조했으리라.
쁘띠 부르조아로서 나는 현실의 이 고통을 면하고 살아왔다.
그 삶에는 큰 긍지도 없었고, 크게 잃을 것이 없는데도 참 근근해야 했다.
내 손안의 작은 것을 마저 잃을 것 같은 공포 때문이었을까. (노예스럽게 살아온 삶으로 체화되었을, 바로 저들이 바라는 바.)
이젠 나이도 먹었고 좀 자유로워져야겠다.
내 마음을 좀 풀어 놓는다해서 내 삶이 전복되고 곤두박질 칠 일은 없다. 그저 마음이 스스로 감옥을 짓는 것일 뿐.
지난 여름내, 가으내 나의 선후배와 벗은 주말이면 광화문에 나가 세월호 참사 일로 일인 시위를 이어갔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내가 내 할 일을 게을리할 때 누군가는 내 몫의 짐을 지게 된다.
시간 내어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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