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그림

커피 만들기 배우며 5주 동안 창 밖 지켜보기(15.10.21-11.19)

heath1202 2015. 11. 19. 23:26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굉장히 소극적이고 신중하고 게으른 편인데 게다가 거의 억지로 배워야 한다면......

억지춘향으로 일주일에 3시간씩 5회에 걸쳐 초속성 커피 만들기 연수를 받게 되었다.

역시 나는 돈 주고 사먹는게 내 적성이라고 생각한다.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이 생활 신조가 커피라고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뭐 고작 열다섯 시간 짜리니까 기분 전환 쯤으로 여기고 즐겁게 받아 보려고 노력 중이다.

연수 장소는 인근 대학인데, 나는 대학에 오면 기분이 좋아진다.

시험만 아니라면 학교에 다시 다녀보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몇 년 전 이곳에서 6개월 간 파견교육을 받았었는데, 아마도 그 때가 인생에서 손꼽게 즐거웠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dog-eat-dog 세상에서 견뎌먹기 힘든 전투력 부재한 인간이므로, 작은 시험도 견디기 싫은 사람인데, 그 당시 연수는 시험부담도 별로 없이

(시험이 있긴 했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시험) 그냥 앉혀놓고 공부만 시켜주는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공부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렇게들 다그치는지.) 내 인생에 그때보다 팔자좋을 때가 다시 있을까 싶다.

 

아무튼 이 곳 연수장소에 오면 오 분에서 십 분 쯤 시간이 남는데, 그 때는 창밖으로 가을 풍경이랑 젊은이들 모습을 내다 보며 잠깐

나른하고 달콤한 기분에 빠지는 한 편, 마음 한 켠으로 나에게 다시 올 수 없는 젊음 같은 것이 일깨워져 조금 쓸쓸해 지기도 한다.

 

창 밖으로 같은 풍경을 보니 문득 5주 동안 같은 장소를 사진 찍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5주가 지나면 나뭇잎도 다 지겠지.

 

 

<첫주. 15.10.21> -이론수업

 

 

 

 

 

 

< 둘째 주. 15.10.28>-기계로 에스프레소 뽑기

은행잎 색깔은 노란빛이 훨씬 농후해졌는데 단풍잎 색깔은 변화가 별로 없는 듯.

 

 

 

 

 

<셋째 주. 15.11.5.>-카페모카 만들기, 커피콩 볶기

지난 주에 비해 한결 잎이 성기어진 잎. 주말에 비 한 번 오고 나면 겉잡을 수 없게 가을이 바닥으로 깊어지겠지.

 

 

 

 

 

에스프레소

 

 

나는 성격이 급해서 이런 일은 적성이 아닌듯.

 

 

얼른 마치고 싶어 강불로 순식간에 볶아버린 콩.

 

캠퍼스 한 켠에 갈수록 빛깔이 짙어지는......마가목은 아닌, 이름 모르는 비슷한 열매

  

 

 

 

 

<넷째 주. 15.11.12.>

 

은행잎이 제일 허탈하게 져버렸군요.

 

 

 

 

 

 

 

오늘 실습하고 차린 한 상입죠.ㅋㅋ

 

 

 

 

<다섯째 주. 15.11.19>-마지막 주.

 

은행잎은 완전히 졌고 날씨가 푹한 동안에는 가으내 지지 않을 듯 싶던 단풍든 나뭇잎들이 요며칠 비에

완전히  생의 의욕을 잃었다. 오늘은 에스프레소 기계가 아닌 다양한 기물들을 이용해 커피를 내려 이런저런 커피응용 음료들을 만들었다.

여러가지 만들다 보니 이름도 깜박깜박하나 결국은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로 귀결될 테니 뭐......괜찮다. 

열다섯 시간 속성 커피 만들기 연수 술렁술렁 잘 마치고 생두는 서리태처럼 오래 보관할 수 있다길래 생두 5종 한 자루 사서 메고 흐뭇하게 돌아왔다.

오늘 도올 김용옥 선생 인터뷰 기사를 보니 김용옥 선생이 케냐AA를 최고로 쳐주신다. 그분을 추종하기로 작정한 김에 커피도 따라 마셔 볼란다.

 

건물 앞 정원의 아직도 이름을 못 알아낸 이 열매만 계절을 역행해 더욱 고와졌다. 

 

 

연수강의실 앞의 포스터

 

날이 추적이니 벤치도 다 비었다.

나뭇잎도 제 명을 다했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기물들

 

 

 

 

 

 

 

용도에 따라 입자의 굵기를 달리해 갈아본 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