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앞 우편함 안에
딱새 한 쌍이 알을 놓았다
딱새가 온 세상처럼 끌어안은 다섯 개의 알
어린 아이의 흰자위처럼 서늘한 그 푸른 알을
나는 신실한 생활의 좌표처럼 읽어 보곤 했다
지나칠 때마다 엄숙의 지경에 이르도록
숨을 삼키고 까치발로 걸으며
즐거이 객 시집살이를 자청하였다
작은 딱새 한마리에게 가는 마음이
에누리 없이 기쁘고 간절한 사랑 같았다
대문을 드나들며
혹여라도 내 관심이 무거울세라
숨죽여 힐끗 흘겨 보면
머룻빛 구슬같은 눈을 또르륵거리며
첫 경험의 소녀처럼 할딱이던 작은 새
어느 땐 나도 그래야 살 것처럼
공연히 그 가쁜 숨에 조응하다가
제 풀에 숨이 잦아들어서는
어이 없어 피식 웃기도 했었다
그리 작다고 그 목숨도 작을리야
맥박이 그리도 뜨거운 것이었다
열흘 남짓 지나 부화가 되었다
세상을 다 삼키려는 듯 쩍쩍거리는 어린 것들과
그것들이 삶의 전부인 어미새 아비새가
필사적으로 세상에 치열한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이 이소를 하였다
작은 새라고 떠난 자리도 그만하지는 않았다
창천을 가를 일 없는 가벼운 목숨에게
나고 드는 일도 그리 가볍던가
고작 스무 날 남짓, 내 짝사랑의 끝이었다
그 사랑의 종결이 어리둥절 했다
저렇게 산뜻하게 마음을 옮기면 되는 것을
아직도 오며가며 가끔 빈 둥지를 흘끔거리고
가끔은 남의 집을 훔치는 듯
손끝으로 조심스레 둥지를 더듬어가며
짧은 사랑의 흔적을 추억해 내기도 한다
빈 둥지에 떨궈진 깃털 몇 개가
모든 게 꿈이 아니었음을 증거한다
내 마음 빈 둥지에 무언가를 다시 품을 수 있다면
그것이 몸이 뜨거운 새라면 좋겠다
우리집 우체통 안에는 지금도 딱새의 둥지가 있다
내가 추억하는 딱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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