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다녀온 뒤에 오후 햇살이 조금 아까워서 차 한잔 할까하고 궁남지에 들렀다.
한 두 주 사이에 연꽃의 형용이 이렇다. 서리라도 몇 번 되게 맞은 꼴이다.
꽃이 아름다울 때만 알아봐 주는 게 인정인지, 사람도 몇 안 보이고 무참한 연꽃만 처연하다.
그 축제 때 북적이던 사람들은 다 어디에 가 있는 걸까.
가을이 '야단맞은 어린아이처럼 풀죽어'(토마스 하디의 싯구절 차용) 있는 정도라면 괜찮다.
영국 문학사에서 가장 우울한 세계관을 보여 주었던 작가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토마스 하디가 가을을 이 정도로만 보았다면 나도 괜찮다.
힘을 내면, 자연의 섭리 정도로 쿨하게 맞이할 정도는 아닐 지라도 담담하게 거리를 두고 그 가라앉는 시간을 지켜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물푸레나무 대신 버드나무가 빛을 잃었고 성성하던 연대들도 다 꺾였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나는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담담히 시선을 던지는 시뮬레이션이라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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