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감정까지도 정치망에 걸러 마음 속에 다시금 복기하고 있는 나를 볼 때면
어느 때는 내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을 記述하고 있다는 생각, 記述하기 위해 산다는 생각이 든다
흠칫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면, 어느 결에 나는 내 안팎의 현상들을 끊임 없이 다른 말로 되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보통 고단한 일이 아니나, 그 행위를 통해 나는 나의 삶의 의미를 획득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記述을 통해 비로소 내 삶이 구체적 형상을 얻고 난무하던 내 사유도 엉성하나마 틀을 짓는 것이다.
어쩌면 시간 속에 안개처럼 녹아버릴 삶이, 생활이 기술을 통해 비로소 피와 살을 얻는다고 할까.
헤로도토스처럼, 사마천처럼 어마어마한 기록의 본능과 소명감은 가질 수 없지만
제 하나 미미한 삶을 연민과 정성으로 들여다봐주는 정도의 생의 의지는 있어야 할 듯 싶다.
상당한 명명주의자인 나답게 삶의 記述이 있어 내 삶이 존재한다고 말 할 수도 있겠다.
그러므로 사랑하면 사랑해야 한다고,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해야 하고, 미우면 마음 속으로 밉다 말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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