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봄날도 좋지만 이렇게 촉촉히 비가 내리는 날도 괜찮지 않나 싶다.
하지만 나들이를 하는데는 고려할 것이 생긴 셈이니 어찌해야 할 거나 숙고하던 참인데
학원농장에서 청보리 보러 오란다. 이상하다. 아직 보리 팰 때는 아닐텐데, 하다가
퍼뜩 떠오른 곳이 선운사다. 선운사의 동백을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잔뜩 흐린 날임에도 고창으로 향했다.
오늘은 늘 미루던 미당시문학관도 들러보고 시간되면 전봉준 생가도 들러봐야겠다고 계획했다.
촉촉한 봄날이라 기분도 모처럼 생기가 있는 것 같다.
하늘이 워낙 무거워서 나 동백꽃 보는 동안까지만 참아 달라며 진입로를 걷고 있는데 이미 빗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를 사먹어가며 기분 좋게 또 내가 좋아하는 선운사에 들어 도솔산을 보니
봄날의 아련한 기운을 품은 온화한 산의 품이 그리 그윽해 보일 수가 없다.
동백은 원이 없게 절정이었다. 피고 지고 절정과 소멸이 딱 정점에서 만나고 있었다.
소나기가 오락가락하여 허둥대고 거리도 좀 있는 탓인지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사진이 없다.
하지만 내 생에 가장 선연한 동백의 일생을 본 날이니 아쉬울 건 없다.
진입로에만 환영의 인사처럼 벚꽃이 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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