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명분없는 고독(13.01.15)

heath1202 2013. 1. 15. 09:31

휴대폰을 새로 장만했다.

동안거에 들었다 할만큼 집에 칩거하다 보니 전화번호 옮기는 게 문제였다.

일주일 가까이 미루다 보니 혹시 급히 전화해야 할 일이 생길까 염려가 되는 거 였다.

그래서 일단 중요한 번호만 몇 개 옮겨 놓고자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저장된 번호가 많지 않을 뿐더러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 이들이 태반이라

과감이 정리하기로 마음먹고 수작업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묵은 전화번호부의 이름들은 남겨야 옮겨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그리고 어찌해야하나 잠시 생각이 필요한 것들로 분류되었다.

일을 하다 문득 나 자신이 참 냉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겁쟁이든가.

이름을 버리는데 정말 결정이 빨랐다.

번호받고 연락한 적 없는 사람들은 다 지웠다.

나에게 연락 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연락할 일은 없을 것이므로.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설령 혼자 그리우면 그리웠지 내가 먼저 전화해서 그들에게 그리움을 강요하기는 싫은 사람이다.

이건 솔직히 말하면 두려움이다.  상대에게 잊혀졌을까하는.

그런데 상대방도 그런 마음이라면... 내가 잊고 있을까봐 연락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전화번호를 사정없이 지워가며 두려운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나만의 울타리 안에서만 살 수 있을까.

요즘도 몇날 며칠을 사람 하나 만나지 않고 살고 있는데, 내가 그들을 찾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나를 찾지 않는다.

나는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멀어지는 것 같다.

 

새 전화기에 옮겨진 번호는 이전 전화번호부의 삼분의 일로 압축 되었다.

앞으로추가되는 번호보다 삭제되는 번호가 많아지면 어쩌지?

 

그래도 오래도록 연락이 없는데도 지울수 없는 번호가 몇 개 있었다.

그들에게는 내가 잊혀졌을까 두려워하지 않고 그 언제라도 전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년후나 십년 후에라도 정말 내가 고독해서 죽을 것 같을 때.

눈물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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