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겨볼 마음

미리 살 수 없는 생(12.11.05)

heath1202 2012. 11. 5. 23:20

아무래도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차분히 가을을 맞고 보내겠노라며, 소소한 것에 정신을 팔았습니다.

고구마를 사들이고, 대봉을 차곡차곡 쟁여 놓고, 얼마간은 또 어른들께 보내어 추운 세월을 위로해 드리고,

또 할일이 뭐가 있는가 생각 하다가, 주말에 무량사에 가서 이 계절을 장사 지내야 하는구나 하고 퍼뜩 떠올리고(윤대녕 님의 소설에서...),

파농해서 가을걷이 할 게 없는 게 안 되었지만 그래도 서리맞혀 삭히는 건 도리가 아니니

다음 주말 한나절엔 주인 잘못 만나 고생했다고 텃밭의 못난 농작물에게 위로를 해 주어야 하고...

짧은 가을이 모자라도록 소소함으로 분주히 보냈지만,

 

나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어떻게 하든 결국은 두려울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잎 안남은 나뭇잎에 시선을, 마음을 둘 필요가 없다고 되뇌입니다만,

숨이 깊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예습이 안 되는 것이 있는 거니까요.

남은 생은 늘 그런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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