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준비가 안 되었습니다.
차분히 가을을 맞고 보내겠노라며, 소소한 것에 정신을 팔았습니다.
고구마를 사들이고, 대봉을 차곡차곡 쟁여 놓고, 얼마간은 또 어른들께 보내어 추운 세월을 위로해 드리고,
또 할일이 뭐가 있는가 생각 하다가, 주말에 무량사에 가서 이 계절을 장사 지내야 하는구나 하고 퍼뜩 떠올리고(윤대녕 님의 소설에서...),
파농해서 가을걷이 할 게 없는 게 안 되었지만 그래도 서리맞혀 삭히는 건 도리가 아니니
다음 주말 한나절엔 주인 잘못 만나 고생했다고 텃밭의 못난 농작물에게 위로를 해 주어야 하고...
짧은 가을이 모자라도록 소소함으로 분주히 보냈지만,
나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어떻게 하든 결국은 두려울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잎 안남은 나뭇잎에 시선을, 마음을 둘 필요가 없다고 되뇌입니다만,
숨이 깊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예습이 안 되는 것이 있는 거니까요.
남은 생은 늘 그런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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