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빈 모니터를 앞에 놓고 자판에 손을 올려 놓은 채 몇 분을 가만히 있었다. 아무 결도 느껴지지 않는 죽음같은 수면을 대하고 있는 듯 막막해서. 짤막한 외마디나마 그 안에 생각과 감정을 우그려 넣어 본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무미무취한 상태, 즉 죽음과 바로 이웃한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너무 긴 것이 아니었나. 큰 일을 저지를 듯 비장하기조차 하게, 숨을 고르는 기분으로 나는 텅빈 나를 노려 보았다.
II
오늘 날씨가 시종 시무룩하지만 그래도 날씨가 포근해 봄이 지척이라는 안도감에 자못 여유로운 날이다. 다시 한 번 북극한파가 올 것이라는 으름장이 들어와 있지만 네가 그래봤댔자 하는 배짱도 생기고. 어저께 영화를 보러 공주에 갔다. 늘 금강변 도로(백제큰길)를 타고 가는데 어제의 강물 위에는 그 전전날과 다르게 훈김이 도는 듯 했다. 물론 내 기분이 들떠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면 내맘에라도 희망의 봄이 오고 있다는 얘기니 다를 바 없다. 주관을 통해 보았을 망정 강가 관목들의 눈 속엔 새싹이 통통하게 살찌고 있고 맑은 하늘은 싸늘한 푸른빛이 아니라 은은한 옥빛으로 부드럽다. 고통의 시기를 잘 견뎌내었고 이제 양질전화의 때에 이르렀다. 비등점에 이르러 마침내 눈을 뜨는 날은 마치 폭죽같은 환희가 있으리라. 어느 한 해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일인데 우리가 늘 망각하는 것은, 우리의 인내가 한계에 이르러 무릎을 꺾을 때 쯤이면 왜 이리 엄살이냐는 양 이미 봄이 와 환히 웃고 있어 우리의 절망을 무안하게 하고 또 안도하게 한다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이미 봄은 지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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