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네시반인데 뜬금없이 밥을 하고 국을 끓인다. 지금 먹을 것도 아니면서. 아마도 늦도록 깨어 있는게 좋아 미쳤는가 보다. 졸립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다. 운동을 하고 와선 토끼 안고 잠시 졸긴 하였으나 곧 몸을 추스린 다음부터는 줄곧 약 한 사람처럼 정신이 조금 하이퍼 상태인 것 같다. 밤낮이 뒤바뀌다... 방학 끝자락에 처음 누리는 본연의 방학같다. 흐뭇하다.
어젠 우편물이 없었다. 광고물도 휴대전화 고지서도 없었다. 문자도 안 왔다. 전화는 교육청에서 공문안내가 한통 있었고, 광고 문자 몇 통 왔고... 나는 소통없이 밤에 운동 나갈 때까지 대문 밖을 한번도 안 나갔다.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보통은 철저하게 칩거다. 그러고도 맘도 편하고 홀로 부시럭거리며 하루를 잘 보냈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한나절도 혼자를 못견뎌 심심하고 시무룩해졌다. 혼자 있을 시간을 간절히 바랬으나 막상 혼자 있으니 막막했다.
요 한달 동안 길을 잘못 들인 것이다. 우선 여행부터가 그렇다. 고독할 틈이 없었다. 어찌 보면 가장 모범적으로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생활했다. 일찍 일어나고 꼬박꼬박 밥먹고 일찍 자고. 내 생각에 빠질 겨를도 없었고. 단언컨대 나는 이런게 정말 싫다. 생활이 강요하여 어쩔 수 없이 자고 먹고 하지만 그것은 최대한 내 주장대로 뻗댄 끝의 타협점이다. 하여 두세시에 자고 그렇게 늦도록 이것저것 결실은 없으나 혼자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며, 전폭적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냈었다.
제멋대로 자게 되었으니 이제 본래의 내 생활로 회귀할 터이니 기쁘고, 앞으론 혼자 깨어있는 시간에 무슨 결과도 도모해 봐야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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