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장미가 피기 시작하여, 대견하여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본다. 대면을 하고 보니, 분홍 꽃잎에 핏줄같은 결도 보이고, 노란 꽃술과 갈색의 아쉬운 흠집과 온전치 못한 잎, 그리고 초록색 씨앗같은 진딧물까지 내 마음에 들어 앉는다. 제 모습처럼 선연하지는 않지만, 오래된 사진처럼, 더 오래도록 내 안에 인화되어 남게 될 것이다. 상처투성이, 흉터투성이 마음에 어쩌면 추억처럼 아름답게 말이다. 무엇을 보든 늘 일별이어서 모든게 이미지나 잔상 뿐이었으나 이제 장미의 실체라고 감히 말할 만도 할 것 같다. (실체가 무엇인지는 사실 모르겠지만...)
사람을 응시해 본 적이 언제였을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 혹은 사랑하는 이의 가여운 잠든 얼굴. 아주 오래 전 얘기다. 살아온 세월이 담담했다면 조금은 더 많은 것에 응시가 있었을까.
마음도 삶도 늘 들끓어서, 자신에 대한 연민과 타인에 대한 분노 속에서 쇠진한 마음이 감히 다른 무엇에 자신을 할애할 수 있었을까. 이제 가끔은 누군가가 가여워지곤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더욱 가여울 것이다. 그동안 나 자신이 그토록 가여웠던 것은 시선이 늘 나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리라. 결함 투성이 삶이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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