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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
조선시대 건축된 성 중에서는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성(城)으로, 서산시에서는 해미읍성을 이용한 축제와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매년 6월에 해미읍성 역사체험 축제(서산해미읍성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교회사(敎會史)에서는 약 3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로 처형당한 천주교 순교 성지(殉敎聖地) 중 한 곳이다.
이곳은 선조 12년(1578) 충무공 이순신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10개월간 근무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1414년(태종 14) 충청병마절도사영이 덕산(德山)에서 이곳으로 이설되었다. 해미읍성은 원래 왜구의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되었는데,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이 성에 주둔한 것도 그때문이다. 세조때에 군사 제도가 진관체제(鎭管體制) 로 개편되면서도 이 역할은 여전하여 충청도 지역의 주요 군사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효종이 병마절도사를 청주로 이전한 뒤로는 해미읍성은 호서좌영(湖西左營)으로서 호서 지방 행정 중심지역할을 하게 된다. 해미읍성이란 명칭도 이때 개명된 것으로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內廂城)이었다.
규모
- 총 길이 - 1,800m
- 성벽높이 - 5m
- 총 넓이 - 대략 5만 9천평
- 성벽 밖에 2m 깊이의 해자를 팠음.
시설
- 관아문 - 해미읍성의 호서좌영 관아 정문으로서 정면3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형식의 건물로 아래층 3칸에 달아 그 문으로 통행하고 상층은 누각을 만든 전형적인 관아문 형식
- 객사 - 관찰사 등 귀빈이 오면 숙박하던 곳이다.
- 동헌 - 지방 관아. 해미읍을 관할하던 관아이다.
- 책실 - 책과 문서를 보관하며 현감의 자제가 거처하던 곳
- 청허정 - 읍성 내 정자. 휴게실 용도였다.
특징
한국의 성은 거의 대부분이 산에 쌓은 산성이거나 강을 끼고 건축되었다. 또는 강을 낀 산에 건설된 성도 많다. 북한산성, 남한산성, 삼년산성 등이 산에 쌓은 산성이라면, 진주성, 공주성, 사비성은 강을 낀 산에 건설되었다. 그러나 이 해미읍성은 평지에 타원형으로 지은 것이 특징인데(대략 달걀 모양과 비슷하다), 한반도에서는 이런 형태인 성이 드물다.
연혁
- 1417년(태종 17년) - 축성 시작.
- 1421년(세종 3년) - 축성 완료. 이후 230여 년간 종 2품의 병마절도사가 주둔하였다.
- 1651년(효종 2년) - 병마절도사가 청주로 이전하면서 해미현 관아가 옮겨와 해미읍성이 되고 문무를 겸한 겸영장이 배치되며 호서좌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 일제 강점기였던 1914년에 군현제가 폐지되고 해미현이 서산군에 통합되면서 읍성은 폐지되었다. 폐지 이후에는 성 안에 면사무소, 초등학교 등 기관과 민가가 들어섰다.
- 1963년 1월 21일 사적 116호로 지정됨
- 1970년대부터 복원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내 건물을 철거하고 동헌, 객사, 내아 등을 복원하였다.
- 2000년대부터 정비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내 동헌, 객사, 내아 등을 복원하고,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 2014년 8월 17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방문하여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주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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