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Leh)에서의 첫 일정(누브라 밸리)이 도로상태나 거리, 또 까르둥 라를 통과하는 과정 등, 여러 면으로 힘들었던 탓인지 판공초 가는 길은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한 것 같았다. 물론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자동차 도로라는 창라를 통과 하긴 했지만 조금 고도에 익숙해진건지 동행들의 상태가 많이 양호해 보였고 길도 제법 포장이 잘 되어 있었다.(포장의 개념을 우리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이곳의 포장이란 급한 불을 끄는데 의의가 있다. 대충 흙먼지와 자갈을 잠재우는 정도?) 당연히 전생이 라다크 인임에 분명한 나는 마냥 기분이 상쾌하고 격하게 움직이지 않는 한은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이곳에 와서 여정이나 '끝'이라는 단어를 생각한다. 개방된지 얼마 안 된다는 누브라 밸리의 끝 뚜르뚝에서도 그런 느낌이었고, 판공초에 오면서 그 느낌은 더했다. 판공초로 가는 도로는 창라를 지나고 부터는 골짜기 아래 쪽으로 낮게 나 있어서 마음이 편안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가엔 들꽃이 만발했고 그 위를 노니는 말이나 야크를 보니 스리나가르-레의 그 절벽끝 아스라한 비포장 도로 위에서의 긴장도, 까르둥라의 그 죽을 것같은 구토와 무력감도 다 잊은 듯 동행들은 즐거워보였다. 아마 꽤나 순도 높은 행복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판공초에 간 날은 고맙게도 날씨가 좋아서 시시각각, 또 보는 위치에 따라 바뀌는 다채로운 물빛을 실컷 볼 수 있었다. 그냥 물인데, 모여서 이렇게 말을 잊게 한다. '아...' 하는 한마디 감탄사 말고는 다른 단어는 사족일 뿐. 어쩌면 삶의 저 편에 서 있는 느낌? 아니면 삶의 이 편 끝, 경계에 선 느낌. 이승의 한가운데는 한참을 벗어난 느낌이다. 팍팍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참 멀리도 왔다는 생각도 든다. 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물빛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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