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사야겠다고 며칠을 생각했다. 시를 읽어봐야겠다고, 그러면 삶에 조그만 의미의 무게가 실릴까 생각해봤다. 나는 안다. 나는 결국 시를 읽지 않을 것이고, 책과 겨루듯 책꽂이를 노려보며 제목만 뇌고 또 뇔 것임을. 그럼에도 쫓기듯 시집을 주문했다. 한 열권 쯤. 나는 안다. 이 시집이 읽힐 때는 아마도 죽음이 성큼 다가와 있어 두려움과 슬픔을 이기는데 종교서적이 더욱 적절할 때임을. 그러나 나는 구급약처럼, 어쩌면 내가 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안식처처럼 시집을 산다. 내가 정말 견디기 어려울 때 나는 나보다 더한 시인의 고통으로 나의 고통을 어루거나 아니면 담담히 눈을 감고 눈물 한 줄기로 나의 고통을 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내일이면 시집이 배달될 것이다. 표지를 소중하게 쓸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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