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와서 보고, 하루 거르고 오늘 보니 이제 연초록 세상이다.
여기서 잠시 변화의 진행을 멈추는 자연의 너그러운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
경치도 아름답고 저녁 공기도 딱 좋게 선선하고 상쾌해서 산책하러 나오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두 무리 일터에서 바로 나온 복장의 사람들(양복차림의 두 남자가 자켓 벗어 팔에 걸고 나란히 걸으니 색다르고, 조합이 다양한 너댓명 한 사무실 동료들로 보이는 이들도 있고, 동무 같아 보이는 중년 여인네 둘도 정답고), 여학생들(벤치에 앉아 곁의 그네에 앉은 우울한 얼굴의 남학생을 신경 쓰고 있고), 저녁 자율학습 째고 나온 듯한, 심란한 얼굴의 남고생(무슨 구실을 대고 빠져나왔을까, 아니면 무단으로?)이 있다, 손주 데리고 나온 할마, 할빠(자식 돕는 보람은 있겠지만, 늙어 두 손주 돌보는 양주를 보니 좀 안쓰럽다. 삼대가 나오면 참 보기 좋을텐데)두살, 네살, 여섯살의 세 아이를 주체못해 허덕이는 젊은 엄마(둘째 아이가 언니 하는 짓 다 따라하다 징검다리에서 발을 적셔 내가 안아 건네 주었다. 엄마는 막둥이 때문에 쩔쩔 매고)도 있다. 그리고 홀로 걷는 이도 여럿 있고 사진 찍는 이들도 있다. 참, 초등학교 남자애들은 보기 드문데, 여기저기 종횡무진 누비는 걸 보니 포켓몬이라도 잡으러 왔나보다.
엊그제 오후 일과인 책읽기를 마치고 살랑살랑 산들바람을 타며 싱그럽게 흐드러진 버드나무 가지에 취해 있는데,
옛날 함께 근무하던 이가 아는 체를 한다. 퇴근하다가 들렀다고,날더러 참으로 부럽다고 한다.
아무려면 노동을 통한 헌신으로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일이 더욱 보람차고 값진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나는 미안해하거나 후회하지는 않겠다.
사십퍼센트 가까이 적어진 보수에 살림살이를 맞춰보는 중이다. 씀씀이가 많이 건실해졌고 맞추어 살만 한 것 같다.
돈을 조금 포기한 대신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다.
미안한 생각이 안들게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두루 숨돌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상대적으로 내가 너무 넉넉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 자매와 젊은 엄마. 맞이가 진취적이어서 밑의 동생들도 그러한 듯하다. 덱크길 혼자 종종 건너와서는 나한테 자랑이 늘어졌다.
저녁에 유난히 향기 짙던 몇그루 나무 매화꽃이 다 져가는데, 생뚱 맞은 한그루 매화나무에 명랑하게 꽃이 피었다. 이제껏 핀 중에 젤 잘났다.
먼발치에서 보니 궁남지가 초록으로 덮여가고 있다.
주룩주룩 초록비
두리번거리는 걸 보니 분명 포켓몬 때문에 왔을거다.
오늘의 인증샷.
백수라고 머리자르는 것도 일없어서 숏컷이었던 것이 단발이 다 되어가도록 미루고 있다.
앞집 아줌마가 "뭐래도 해야지"하면서 한걱정이시다.
'여행(우리나라) > 아름다운 부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소산 벚꽃구경1(17.4.9) (0) | 2017.04.13 |
---|---|
한중한(閑中閑)(17.4.8) (0) | 2017.04.10 |
궁남지의 관찰일지라도 써야 할까(17.4.3) (0) | 2017.04.04 |
궁남지, 사흘 간의 봄의 추이(17.3.28-30) (0) | 2017.03.31 |
궁남지-봄인 거지요?(17.3.13) (0) | 2017.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