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재방송을 보다가 가슴이 뭉클해져서 무식하게 카메라 들이대고 마구
캡쳐한 사진들입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따뜻한 사람냄새를 맡습니다. 힘을 내야겠습니다.
창신동에는 3,000여개의 작은 봉제공장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 10평 남짓한 공간들 속에서 일하는 '누나'들을 만났습니다. 70년대 가난한 이땅의 딸들로 태어나 상경하여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 자신의 꿈은 꿈에도 꾸어본 적없이 가족과 오빠, 동생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했던 누나들입니다. 그속에서 먼지를 마셔가며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휴일도 모른채 일하고 3,500원을 월급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끝끝내 떠나지 못한채 그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미싱을 돌려 자식들을 키워내며 30여년 고단한 세월을 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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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간안에서 온종일을 함께하는 재봉사 부부 사장님.
그 힘든 세월을 함께 했으므로 서로가 더욱 애틋할지 모른다.
스티로폴에 뚫어놓은 창구멍. 이 작은 구멍으로 가끔 바깥세상을 내다보며 숨통을 티운다.
저 아래 세상은 참 불빛이 찬란하기도 하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데도 어째서 사는 모양이 나아지질 않는 걸까요.
경기가 좋지않아 일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전태일이 재봉사였었죠. 밤 10시까지 강도높은 노동을 하고 한달에 두번밖에 쉴 수 없었는데,
전태일 열사의 죽음후로 조금씩 노동조건이 나아졌다고, 전태일이 늘 가슴아파했던, 그 시절 어린 재봉사였던 아주머니가 말씀하시네요.
아주머니가 노래를 아주 분위기 있게 잘하시네요.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이 애창곡이라고 하시네요.
오토바이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실어나릅니다.
이제 이곳엔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대신 이국의 젊은 처자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노동의 가치가, 자기희생의 숭고함이 인정받지 못하던 참 일그러진 나라였으니까요.
뭐든지 3,40년을 하면 예술이라고, 진리를 말씀하시는 사장님. 그런 당당한 자부심이 참 보기 좋습니다.
하루 수천장씩 박고 다리는 이 작은 공간.
우리모두가 그 시대 가난한 여공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것,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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